번호:23   
별밤지기’의 과거 현재 미래
 
 

“외롭습니다.”

이문세가 외롭다니…. 행복한 가정에 든든한 동료들까지 곁에 있어 세상 부러울 게 없는 데도? 그의 얼굴에 드리워진 외로움은 20년 넘게 한길을 걸어 온 중년 남성에게서 흔히 느껴질 법한 것이다. 누구보다 화려한 길을 걸어왔지만 타인에게는 그저 과거로 기억될 뿐,더 세련되고 훌륭한 결과물을 바라고 있다. 수많은 후배들에게 ‘모범’이 돼야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이기도 하다. 해를 거듭할수록 가슴을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같은 연배의 동료들도 하나 둘씩 무대에서 사라져 간다. 그래서 이문세는 외롭다.

그의 14번째 정규앨범 ‘빨간내복’에는 자신의 그런 과거,현재,그리고 미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원한 ‘별밤지기’로 자신을 기억하는 이들을 위해 MBC 라디오 ‘별이 빛나는 밤에’의 DJ로 활약하던 80년대에 대한 향수가 녹아든 노래들을 실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아들의 아버지이자 남편으로서 하고 싶은 말을 노래로 부르기도 했다. 후배들에게 “나 아직 싱싱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 음악적 실험도 주저하지 않았다.

이번 음반의 수록곡 가운데 정말 반가운 노래가 있다. ‘추카해요’가 그것이다. 이 노래는 오랫동안 ‘별밤’에서 생일축하곡으로 쓰였다. 이문세 특유의 서정성을 느낄 수 있어 그동안 정규앨범에 넣어 달라는 팬들의 요청을 많이 받았다. 타이틀곡 ‘내 사랑 심수봉’은 어엿한 성인이 된 ‘별밤’ 세대에게 바치는 ‘응원가’이다. 대중가요의 한 소절을 들으며 눈물짓던 그 시절을 회상케 한다. 오랜 음악적 동지인 노영심과 함께 만들었다.

아버지이자 늘 친구 같은 남편으로서 아들과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도 눈길을 끈다. 바로 ‘애국심’과 ‘Wow hills kiss’다. 이문세는 “잔소리 절대 하지 않는 아버지가 되겠노라고 그렇게 다짐했는데 뜻대로 안 되더라”며 “아버지는 아버지일 수밖에 없는 것 같다”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어느새 사춘기 소년이 돼버린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많은 말들을 추리고 추려 노래로 지었다. 그게 ‘애국심’이다.

훌쩍 커버린 아들의 뒷모습을 보니 문득 아내가 떠올랐다. 자신과 아들을 뒷바라지하느라 ‘아줌마’가 되어버린 그녀에게 선물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서울 홍익대 뒤편 와우산에서 남몰래 키스하던 연애시절을 떠올리며 ‘Wow hills kiss’를 썼다. 그는 “그때나 지금이나 내 마음은 한곁같다”고 담담하게 노래한다.

후배가수 앤(Ann),만능 엔터테이너 양동근과 세대를 초월한 ‘놀이’도 해봤다. ‘유치찬란’이 그것이다. 이문세는 “내 앨범에 담겨 있기는 하지만 사실상 그들의 노래”라며 “내 노래라고 해서 꼭 내가 주인공일 필요는 없지 않은가. 멋진 후배들에게 마음껏 놀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여유를 보였다.


(스포츠투데이) 허민녕 기자 tedd@sportstoday.co.kr

 
 
작성일:2002.12.01